본문 바로가기 프로그램 메뉴 바로가기 푸터(고객센터 등) 바로가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김광운

프로그램 메뉴

김광운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한국 현대사의 재인식
김광운 (국사편찬위원회)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100회를 이어가면서 우리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된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하였다. 사람들은 그 어떤 환희나 영광의 순간보다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아프게 하는 것만을 기억 속에 남기고 있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다양한 사건과 주제들을 통해 우리사회 공동체가 안고 있는 갈등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현재', '나'만으로는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역사'를 통해 배우고, '사회구조'에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에 대한 판단을 위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대화의 계기 혹은 매개체 역할을 해주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다뤘던 '분단'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살펴야 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일제의 식민지 지배, 38도선 획정과 미 · 소 외세의 한반도 개입, 여기에 신 국가 건설을 둘러싸고 견해를 달리하는 민족 내부 세력의 갈등 등을 고려해야 분단 현실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기왕에 형성된 우리 사회의 편협한 이데올로기 지형은 어떠했는가? 좌와 우를 가르는 것은 우리 사회 내부의 발전전망에 대한 차이가 아니라, 미국과 북한에 대한 인식 태도였다. 반미연공(反美聯共)은 좌파(左派)였고, 숭미멸공(崇美滅共)은 우파(右派)가 되었다. 그 결과 민족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RED'가 되는 비극적 코미디가 현실에서 일어났다.

일본의 우리민족에 대한 식민지통치와 그것이 남긴 가장 커다란 해악인 민족분열과 분단에 대하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다루었다. 그런데 식민지 경험과 이어진 동족상쟁의 비극 그리고 권위주의정권을 거치며, 민족문제와 관련한 자료는 훼손되었으며, 새롭게 기록하지도, 보존하지도, 활용하지도 못하였다. 따라서 역사적 진실을 재구성하는 것이 어려웠고, '구술'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과거사'를 둘러싸고 사활적 정쟁을 벌이거나, 국민적 관심이 지속되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100회를 이어나간 것도 우리 근현대사의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과거사 청산과제 가운데서도 단연 최고 관심은 친일파 문제일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만주의 친일파>, <친일경찰 노덕술>, <반민특위> 등을 기획하여 우리 시대의 흐름에 발맞췄다. 나아가 친일파가 청산되기는커녕 오히려 득세했던 현실과 관련하여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일본 커넥션-쿠데타정권과 친한파> 등으로 '한 · 미 · 일 3각 유착'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분단과 미국의 상관성도 새롭게 조명되었다. 어떤 분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미국'의 존재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오욕'으로 이해하는 현실에서 미국과 관련한 논의는 그야말로 금기와 성역을 깨나가는 과정이었다. 먼저 '분단의 기원'에 대한 해명은 완성도가 높았다. 그런데 재미는 별로였다. 과연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정확하고 그런데 보는 이의 가슴을 박박 긁어 놓을 수 있게 하려면 어찌해야할까?

분단에 따른 또 다른 국가, 북한에 대해서도 다양한 주제로 접근하였다. 김일성 항일무장투쟁의 진실로부터 최근의 '북핵문제'까지를 다루었고, 남북 대결과 대화협력 등과 관련한 주제 및 서해교전과 NLL, 94년 한반도 전쟁 위기들도 방영하였다. 잊혀진 전쟁이었던 6 · 25 전쟁을 망각으로부터 끌어내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이며, 앞으로도 쉽게 끝이 나지 않을 수 있다는 공동 논의의 주제도 만들었다.

사람들이 기억을 되살려 말했던 것은 결코 역사 그 자체가 아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것은 특정한 사안에 대한 견해일 뿐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서로 갈등하는 두 개의 사회 · 경제체제 사이에 벌어진 열전이었듯이 한반도에서의 6 · 25 전쟁도 마찬가지였고, 그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전쟁 후 50년이 지나면서 이제야 비로소 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