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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왔소이다 시트콤 기획일지 ③ 신판 홍길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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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기획일지 ③ 신판 홍길동전

③ 신판 홍길동전... 2004. 10. 11

조선에서 현재로 오는 사람이 홍길동이라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코미디의 소재는 참 많이 나올 것 같다. 과거의 인물이 현재로 와서 생기는 시간여행 코미디에다 축지법, 투시술 등의 도술을 가진 인물이 현재의 과학 문명과 만났을 때 생기는 마찰.

홍길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그가 뛰어난 도술과 무술의 달인이었다는 것이다. 길동, 고생고생 끝에 드디어 축지법을 익혀 천리 길을 한달음에 달리게 되었다. 현재로 온 길동, 후손들에게 자신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사흘이면 달려갈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는데... 아뿔싸! 이미 고속전철이 나온 후라 3시간이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거리. 당황한 길동 잠깐 축지법을 보이느라 속보 시범을 보여주는데 옆에 지나가는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꼬마가 더 빠르다. (된장...)


다급해진 길동, 별의 기운과 천문을 읽어 기후를 예측해 보이는데, 인터넷에 뜬 일기예보보다 정확도가 떨어진다. 과거에 이름을 날린 슈퍼 히어로 홍길동이 현재에 와서 엉성한 도술로 고군분투하는 내용. 이거 재밌겠다.

홍길동에게는 도술 말고도 서자로서의 신분 차별을 겪은 아픈 사연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소재가 많이 나올 듯. 길동 현재에 와서 무시당한 설움에 포장마차를 찾아 술을 마시는데, 옆자리에서 한 청년 장탄식을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내 신세야.” 어, 저건 내 대사인데? 솔깃한 길동 청년에게 술을 먹이는데 알고보니, 그 청년은 유명 재벌가문의 숨겨진 아들이다. 길동, 그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이건 비밀인데 실은 난 홍길동이야.’ 그 친구 대꾸해준다. ‘당신이 홍길동이면, 난 재벌 2세야.’ 아픔을 가진 사내들의 만남.

더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알려진 홍길동의 마지막은 신분 차별 없는 이상향, 율도국을 건설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만약 홍길동이 이상향을 찾아 떠난 곳이 미래의 세상이라면? 도술을 통해 신분 차별 없는 세상으로 갈 것을 염원하던 길동, 평등사회를 찾아와보니 그곳이 미래라면? 조선의 신분 차별이 없어진 이곳에서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 율도국을 세우기 위해 다시 활빈당을 조직하는 길동. 하지만 부자들의 돈을 뺏아 가난한 이에게 나눠준다는 이들은 조직 폭력배로 분류되어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고... 기존 조직폭력배들이 신흥 조직인 줄 알고 패싸움을 걸어오니 길동 체면이 말이 아니다. 활빈당이 어찌 산적 취급을 받는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홍길동과 활빈당 이야기는 현재에도 분명 재미난 코드가 많은 소재인 것 같다.

그런데... 소재 회의를 진행하면서 드는 의구심... 과연 우리에게 알려진 허구의 인물을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데 부담은 없는가. 홍길동의 대중성을 등에 업는 대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기회를 버리게 되는 거 아닌지? 그러던 차에, 막내 작가의 한마디. ‘근데 옛날에도 현대판 홍길동 이야기가 있지 않았나요? 밥풀떼기 김정식 아저씨와 이원승 씨가 나온 슈퍼 홍길동전. 왜,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음... 요즘 말들은 방귀를 뀌면서 달리는군” 그랬잖아요.’

아뿔싸. 그렇다. 이미 누군가 선수를 친 뒤였다. 젠장... 이제 와서 10여년 전 코미디 뒷북 치기는 그렇지... 홍길동전은 물건너 갔고. 그럼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한다?


11월 6일 토요일 저녁 7시 '조선에서 왔소이다' 첫방송